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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져 내려오는 골목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겨울

등불 앞세운 저녁 햇살이

여인숙에 먼저 와서 기다린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 그리움을 업고 가는 것

 

신세진 겨울을 갚기 위해

비닐봉투에 친구 이름 넣어 불러주면

두터운 빙벽 이기며

제비꽃 생글거리는 미소 피어난다

 

화물트럭 운전기사

무너지는 뇌졸중만 남고

질주하는 광장을 바라보던

길다란 무료급식 줄에서 만난 삼년 전과

똑같이 춥지 않다

 

운전석 한 평에서

여인숙 방 두 평으로 고만고만 열댓 개의 방

이불 한 채 가스버너 밥통과 수저

그의 지친 몸처럼 엎어진 막걸리 병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익어가는

인도산 향긋한 카레 냄새가

노을처럼 맛있다

 

따스한 군불로

신세진 겨울 지필 때

상처난 것들을  안아주는

고등동 인숙

   

인 사 말

     센터장 김대술 신부

  어느 추운 겨울 저희 센터 부근에 있는 고등동 여인숙을 찾아 갔습니다. 화물트럭운전을 하시다가 뇌졸중이 발병하여 여인숙에 계신분이지요. 저와 나이가 비슷한 그분의 입장은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문득 한편의 시가 저에게 오셨습니다.

  허망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 사람에게 각자 있는 소담스운 영혼임을, 우주 탄생과 더불어 유전인자 속에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더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길벗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노동과 헌신과 기도는 결국 백만 송이의 후원자들,  벗님들과 함께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강건 하시기를 ......

 고등동  여인숙

김 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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